‘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 대통령이 돌아왔다. 앞서 지난 2017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그는 지난 1월 다시 한 번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특이한 이력을 소유하게 됐다.
‘대통령 단임제’인 우리 한국과 달리 미국은 기본 임기 4년에 ‘최대 2번’까지 대통령직 수행이 가능한 연임제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이한 이력’을 갖게 됐다고 표현한 이유는 45대 대통령 이후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사례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로버 클리블랜드(22·24대) 전 대통령 외에는 모두 연임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5대 때에도 독특한 이력을 가진 첫 대통령이었는데, 바로 군 복무를 하지 않았으며 정부에서 일해 본 적이 없는 사업가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 출신답게 상호주의 외교가 아닌 ‘일방주의 외교’ ‘자국 우선 국가주의’에 몰입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는 그리 과한 게 아니다. 이를 방증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취임 당일 26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먼저 ‘국제 기후 협정에서 미국을 우선시 한다’며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기로 했다. 다른 국제 기후 협정과 유엔 기후 변화 협약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끊겠다고 했다. 1기 때 탈퇴하기로 했으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번복된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도 현실화 됐다.
그리고 우리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주목해야 할 게 ‘미국 우선 무역 정책’이라는 각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내각 장관이나 무역 대표, 경제 보좌관, 무역 및 제조업 수석 고문 등에게 ‘불공정하고 불균형한 무역’을 다루어야 한다며 중국을 포함한 무역 및 관세 정책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글로벌 세금 협정’에서도 탈퇴하기로 했다. 글로벌 세금 협정은 연간 매출 1조 1203억 원(7억 5000만 유로) 이상의 다국적 기업 소득에 대해 최저 15%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소득에 대한 영외 관할권을 허용하면서 미국 기업과 근로자의 이익을 위한 조세 정책을 제정하는 미국의 능력을 제한한다면서 글로벌 세금 협정이 미국에서 효력이나 효과가 없고, 이는 미국 주권과 경제력을 회복한다고 강조했다. 위와 같은 행정 명령이나 각서들은 관세 전쟁을 염두에 둔 행정 조치들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중국, 캐나다, 멕시코 수입 제품들에 각각 10%, 25%,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국이 맞대응을 할 경우 관세율을 더 올리는 보복 조항도 포함시켰다.
혹시나 우리 한국에도 조치가 있을까 싶어 노심초사했는데,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 품목 중 자동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다만 확정 발표는 4월 2일 예정돼 있어 변동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완성차업계는 미국을 대상으로 ‘무관세’를 적용받아 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에 따른 것인데, 이미 철강 알루미늄은 국가와 상관없이 25% 특별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에 자동차도 똑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효자 수출 품목’ 중 하나인 자동차는 지난해 278만대가 배를 탔다. 그 중 143만대가 아메리카로 향했다. 절반 이상이 미국으로 수출됐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수준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 달러(한화 14억 3200여만 원)를 기부했고, 핵심 경영진이 대거 참석했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미국 대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선제적으로, 현대차 사장에 호세 무뇨스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 최초 외국인 CEO인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 사장은 미국 태생에 푸조-시트로엥, 대우자동차, 도요타, 닛산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는 올 초 신년회에서 “트럼프 이전 행정부 시기 북미 시장에 큰 투자를 결정했으며 그 투자가 곧 결실을 보고 있다”며 “우리는 인센티브가 아니라 사업 기회를 기반으로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이 우리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미국 사바나 투자 프로젝트인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를 최대한 활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 대외협력 PR담당 성 김(Sung Kim) 사장 역시 미국에 특화된 CEO 중 하나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바 있다. 한미 수교 121년 만에 첫 한국계 주한 미국 대사였다. 동아시아·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정통한 미국 외교 관료 출신 전문가로 평가 받는 성 김 사장은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핵심 요직을 맡아 왔다.
2023년 퇴임 후 작년 1월 현대차 고문역으로 합류했다. 이번 사장 승진은 그룹 싱크탱크 역량 제고와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현대차 측은 설명했다. 즉, 글로벌 대외협력, 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 및 연구, 홍보·PR 등을 총괄하면서 그룹 인텔리전스 기능 간 시너지 제고 및 글로벌 프로토콜 고도화에 기반한 대외 네트워킹 역량 강화에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동차 베어링 시장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자랑하는 글로벌 메이커 일진그룹 입장에서도 미국 정책 방향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물론 일진그룹이 현대기아차 외에도 제너럴 모터스(GM), 포드, 이제는 다국적 기업이 된 스텔란티스(구 크라이슬러)와 같은 미국 브랜드에도 휠베어링을 납품하고 있지만 현대차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지원이다. 향후 미국 관세 정책에 대응하는 방안을 내놓겠지만, 이와 더불어 경영안정자금 등 정책 금융 등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